지난 2월 1일부터 어제의 2월 9일까지의 이야기다. 태어나서 가장 몸이 좋지 않아서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그간 몸이 아프면서 생각하고 느꼈던 바가 너무 많아서 다시는 이런저런 과오들을 반복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기록을 남긴다.
먼저 약 열흘 간의 몸상태를 시간순으로 정리해본다.
2월 1일(월) : 점심을 먹고 난 이후부터 몸이 으슬으슬 떨려오더니 몸살이 날 것만 같은 상태로 정상퇴근.
2월 2일(화) : 새벽에 출근을 할 당시 너무 한기가 돌았고 몸이 약해져 있으니 어두운 출근길이 무섭게 느껴짐. 출근하자마자 책상에 앉아있을 수가 없어 바로 의료센터로 올라가 열을 측정하니 18.9도였고 그렇게 2시간을 잠. 당시 난생 잇몸이 붓는 증상을 처음 겪어 내과를 들렀다 치과를 가야겠다고 생각. 이후 열은 조금 내렸으나 완쾌를 위해 오전 휴가를 내고 병원으로 이동. 내과에서 진료를 받고 링겔을 맞음. 링겔을 맞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선두(드래곤볼에 나옴)를 먹는 효과를 느껴 잇몸까지 치료하자는 마음에 치과로 이동. 당시 12시시 전후여서 대부분의 치과들이 점심시간이라 진료를 받지 않는 상황. 직장인이 시간을 내어 치과를 가는 것이 쉽지 않아 어떻게든 점심시간이 1시인 치과를 발견하여 접수. 해당 치과의 첫인상은 겨울왕국의 머글들처럼 너무나 정신없게 간호사와 카운터 직원들이 떠들고 돌아다녀 최악이었음. 치과에 간이 카페까지 있어서 더욱 정신이 없었음. 그렇게 진료시간이 되어 잇몸이 부어서 왔는데 그 이유를 알고 싶고 치료하고 싶으며 몸살이 나 링겔을 맞고 왔다는 의사를 전달. 여느 치과처럼 엑스레이를 찍고 입안에 사진을 촬영. 여기서부터 문제가 잇몸이 부어서 왔는데 손기술이 서툰 이상한 남자직원 두명이 거울을 입안에 쑤셔 넣으며 잇몸을 타격하기 시작.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였으나 조금만 참으면 치료받을 수 있다고 나 스스로를 독려. 그러나 약 20분간 거울공격이 계속되었고 기어이 촬영은 하였으나 잇몸의 아픔이 더욱 가중됨. 그리고는 의사가 들어와 정말 조금 썩어보이는 어금니들의 치료가 필요해 보인다고 장사를 하기 시작하는데 이 부분은 여러번 치과를 다녀본 경험상, 당당하게 괜찮다고 말함. (과거 한 사설치과에서 사랑니를 뽑았는데 엄한 7개의 치아들이 썩어있다며 수십만원의 치료비를 제안하였고 당황한 나는 일단 후퇴를 하였음. 이후 우연히 한양대 치과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해당 치아들이 정말 치료가 필요하냐고 물어보았더니 아니라는 답변을 들음. 망할 사설치과 돌팔이 의사의 얼굴이 떠올랐으나 고객으로서 다시는 안가면 된다는 권리를 행사하면 되니 문제는 해결) 그런데 이후 이상한 남자 두명 중 한명이 또 장사를 하기 시작함. 1년치 치아관리 서비스를 가입하면 십만원 이상이 든다고 했던것 같은데 몸이 안좋았고 치료를 정말 얼른 받고 싶었던 나로서는 상당한 불쾌감을 느낌. 또 마음약한 나는 10분의 광고를 들으며 누워있었음. 여하튼 그렇게 광고가 끝나고 드디어 진찰을 받기 시작했는데, 범상치않은 도구들을 들고 간호사 입장. 칫솔질을 잘해야한다며 치간칫솔과 이상한 다른 칫솔로 내 잇몸들을 파괴하기 시작. 피가 상당히 났고 물로 입을 헹구는데 빨간 피가 나에게 충격을 줌. 간호사가 피가 심할거라며 겁내지 마라고 했으나 겁먹었음. 여하튼 그렇게 칫솔질을 두번 하며 아플 때마다 신음소리를 냈는데 간호사도 정말 아픈걸 아니까 같이 아파해줌. 그때 반응이 "흐응"이었다고 기억. 여하튼 그렇게 칫솔질 후 스케일링을 하는데 피난데 스케일링을 하니까 정말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음. 액체마취를 하고 했는데도 너무나 아파 그 몇십분이 몇시간으로 느껴졌음. 그렇게 치과진료가 끝나고 나오는데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 마음은 후련하였으나 2% 아쉬웠는데 집에와서 생각해보니 약을 처방해주지 않음. 피가 이렇게나 났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지 라는 고민에 빠짐. 뭐 젊으니까 낫겠지 라고 생각하고 잠을 청함. 화요일은 그렇게 마무리.
2월 3일(수) : 아침에 일어나니 몸은 정상이 아니었지만, 일단 출근. 화요일과 마찬가지로 몸이 너무 추웠음. 또 회사에 가니 열이 나기 시작. 이번에도 18.7도의 발열을 확인하고 또 의료센터에서 잠을 청함. 어제도 일찍 귀가했는데 오늘도 그러기에는 눈치가 보여 무리해서라도 책상에 앉아 있었음. 이때부터가 문제였는데 열이 내려가지가 않았음. 몸살 때문이니 내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 되겠지하고 계속 버팀. 그러나 열은 내려가지 않음. 퇴근 후에도 열이 내리지 않았고 오히려 더 올라 도저히 서있을 수도 없는 몸상태가 되어버림. 계속 18도 상위의 열을 유지하며 계속 잠.
2월 4일(목) : 열이 너무 심해 새벽 내내 잠을 설치다 결국 전화로 휴가를 통보. 뭐 눈치고 나발이고 걸을 수도 없을 정도의 몸상태였기에 당당하게 휴가를 냄. 수요일 저녁까지는 잇몸이 나름 괜찮아 음식은 천천히라도 먹을 수 있었지만 이때부터는 음식도 먹지 못함. 물도 못마시는 지경에 이름. 그렇게 목요일은 하루종일 잠을 청함.
2월 5일(금) : 피부가 벗겨져 신경이 보인다고 표현해야하나 그정도의 잇몸상태가 되어버림. 이제는 안되겠다 싶어 삼육대학병원으로 이동. 증상을 말하니 또 과거 내과에서의 진료와 동일한 진찰을 해줌. 엄한 소변검사와 엑스레이를 찍고 독감은 아니니 걱정말라는 진단을 받고는 약을 한봉다리 들고 귀가. 증상은 계속 좋지 않았음.
2월 6일(토) : 이날 오전부터 열이 내리기 시작. 약 일주일동안 하루 두번정도 18도를 넘나드는 발열을 경험하고 나니 몸과 마음이 완전히 병들어버림. 힘이 없으니 나쁘고 약한 생각만을 하게됨. 또 하루종일 잠을 청함.
2월 7~9(일~화) : 일요일에는 부산대학교 병원 응급실로 가 잇몸증상을 설명하고 진찰을 받음. 피검사까지 하니 염증이 있고 바이러스가 있을 수 있으니 바이러스 관련 약까지 처방을 받음. 이후 처방받은 약을 먹으며 잇몸이 살아나기 시작.
글로 표현해 읽어보니 그렇게 아픈 느낌이 와닿지 않는것 같긴 하다. 어쩔 수 없지. 여하튼 결과적으로 그렇게나 아팠던 원인은 '과로로 인한 피로가 유발한 몸살과 신경성 스트레스+ 잇몸파괴 >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잇몸이 파괴되어 잇몸질환이 열을 유발'이었다.
이어서 아프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무작위로 기록해본다.
건강
말로만 건강을 외치고 젊으니 건강은 당연한 권리라며 지키길 부정해왔던 나를 발견했다. 직장인이지만 직장인이기를 온몸으로 거부하니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건 당연했다. 의욕은 앞섰지만 몸이 뒤쳐져 스스로를 혹사했었다. 평소 바쁘고 피곤하고 무리해서 일을하고 행동하는게 젊음의 특권이라 누리며 살아온 스스로를 반성했다. 자동차도 장거리 운행을 하려면 바퀴와 엔진을 점검하고 기름을 든든히 넣어줘야하는데, 나는 운전자의 입장에서만 그 먼 여정을 생각해왔던 것이다.
운동
작년 여름까지만 헬스를 했고 웨이트를 하며 등에 부상을 입은 이후로는 집에서만 가벼운 운동들만 했었다. 그래도 체형은 유지되었고 집밖에서 조깅을 하며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 너무나 길어 그정도 운동으로는 몸이 굳어간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더 많은 운동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는 감지했음에도 행하지 못한 것을 반성했다.
그리고 운동은 이쁘고 멋진 체형을 유지하는 겉멋들린 행위라고만 생각해왔다. 이 못되먹은 생각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물론 체형유지를 위한 목적도 있지만, 운동은 인간이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당연한 노력이었다. 연세 많은 어르신들께서 무리해서라도 걸으시고 남녀노소 산을 타는 것들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식습관
담배는 한번도 피어본 적이 없고 술도 너무나 싫어해 술담배만 안해도 몸이 건강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만큼 정크푸드를 서슴없이 먹고 무엇보다 과자와 라면을 많이 먹는 나였다. 밥도 백미를 먹는 비율이 너무나 높았다. 그리고 음식은 배만 채워주면 되지 굳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꼭 먹어야 하냐는 의문을 가지고 살았다. 사람들이 좋은 재료 좋은 음식을 찾아다니는 이유가 다 있었다.
취미
운동과 마찬가지로 나는 사람들이 취미를 하나씩 찾아다니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굳이 커피를 배우고 꽃꽂이를 배우며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억지미소를 지어가며 토론을 해야하냐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그냥 남들이 하니까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다운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 하는 아주 멋있고 용기있는 행위였던 것이다. 단순히 직장인들이 일만하는 단조로운 삶을 살게 되면 정말이지 몸과 마음이 병들어 무너지게 되어있다. 이번 나의 경험이 이를 방증하는 것이겠지.
나는 회사의 일 뿐만 아니라 사실 내가 하고 싶은 다른 일(일의 범위는 참 넓으니 해석은 하지 않겠음)도 일종의 취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도 문제였다. 일은 행위자 입장에서는 개념적인 취미는 될 수 있지만, 실질적인 취미는 되지 못한다. 취미는 취미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이 편안해져야하는 것인데 일은 아무리 큰 야망과 선의의 목적이 내포되어있다 하더라도 일은 일이었다. 몸은 긴장하고 마음은 지속적인 신경을 쓰는 상태를 유지해야하니 당연히 더욱 나는 지쳐갔다.
결과적으로 나는 멋들어진 취미를 찾고 있다. 그 후보로는 평소 관심목록에 쌓아두었던 '목공, 가죽공예, 인테리어 관련 취미, 코딩, 수영, 사진촬영, 더욱 잦은 여행' 등이 있는데 정해진것은 없다.
부정적인 의식
사실 위의 모든 이야기들이 내 부정적인 사고방식과 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자꾸만 세상을 삐딱하게 보려하니까 다 삐딱해 진거다. 솔직하게 말해 너무 건방진 마음상태로 삶을 살았다. 원하는 대로 노력하면 다 되는것 같으니까 세상이 만만해 보인거다. 그런데 2015년은 그러지 못했으니 얼마나 몸에 스트레스와 실망감이 쌓였을까. 항상 오색찬란하고 가능성으로 점철된 세상이 나를 불러 흥분되었던 2014년까지의 생활과는 너무 다르게 일상은 어두운 모노톤이 되어있었다. 그러니 입은 불평을 토해내고 행동은 거칠고 투박하게 변해버렸다.
신앙
사실 나의 신앙생활을 주변에 드러내기가 항상 부끄러웠다. 그만큼 많이 부족했다. 그냥 교회만 갔던 거다. 정도는 필요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스스로에게 당당하게끔 신앙생활을 신경써야할 때가 온것 같다. 이건 이번에 느낀 모든 것들 중에 최상위에 속한다. 그만큼 중요한 것인데 내가 자꾸만 거부해왔다. 특별한 계기가 없으니 스스로에게 자극이 되질 않았다. 자극이 없으면 필요도 없는 것 아니냐고 스스로 거만해져 있었다. 그렇게 나는 무너졌고 겸손한 마음으로 처음부터 시작하려 한다.
28
27이라는 숫자와 28이라는 숫자는 정말 다르게 다가온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이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젊으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무책임하게 살아도 상관없겠지라는 사고로 세상을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느낌 자체가 다르다. 그만큼 어른이 되어가는 속도도 빠르고 세상에서 28세라는 나이로 사람들을 마주할 때 풍겨야할 냄새와 품위를 신경써야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어디에서 이제 어리다는 소리를 듣기가 어렵다. 물론 내 나이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거나 두려움은 없다. 30이 넘어도 그런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그 나이를 온전히 살아갈 준비만 되어있다면 말이다.
일과 커리어(비밀)
참 난감한 부분이다. 내가 전문직 종사자가 아니라서 커리어를 설정하는 것이 정말이지 어렵다고 생각한다. 상사나 선배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언을 건내길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 나도 물론 이해가 된다.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보통 그냥 회사가 하라는대로 가라는대로 가서 일한다. 그러니 개개인의 자아실현은 발현되기가 상당히 어렵다. 자신의 이상과 꿈을 지니고 일을 하지만 바쁘고 힘든 일상에 그것들의 불은 사그라들고 약간의 금전적인 보상으로 불씨를 유지는 하고 있다. 나도 물론 그러고 있다. 이 일과 커리어의 문제는 장기적으로 구체적인 플렌을 세우고 대비하지 않으면 '내가 임마 젊었을때는 야망이 엄청났어 임마'를 외치는 치킨집 사장으로 귀결될 것만 같다. 물론 절대 그냥 시간이 이 부분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 말 그대로 아름답게 '잘' 살아야 한다.
0 개의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