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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업의 창업주가 대학을 중퇴하고 다른 회사에
입사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건 정말이지 상대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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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안다 : 미국의 IT 거물들은 대부분
IT 붐의 시류에서 기회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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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산업에 있어 서비스를 만든 창업자들의 경우
초기에는 반드시 엄청나게 막연하고 과감한 노력을 한다 : 며칠 밤샘은 기본이고 철판을 깔고 고객들을
만나러 다닌다.
실버맨은 곤충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던 소년이었다. 우표와 낙엽 같은 것도 모았던 소년이지만 그가 곧바로 핀터레스트로 직행한
것은 아니다. 그가 미국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콘퍼런스에서
한 인터뷰에 따르면 미국 아이오와에서 태어난 실버맨의 부모님은 의사였고 그 역시 부모님을 따라 의대에 진학했으며 졸업 후엔 2003년부터 워싱턴DC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Techcrunch라는 IT 웹사이트를 접하고 엄청난 속도로 바뀌고 있는 IT 업계에 몸담기로
결심한 뒤 2006년 구글에 입사했다. 공대 출신이 아니었던
그는 광고를 배치하는 등 구글 제품을 디자인하는 부서에서 일하게 됐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만족하고
안주하지 않았고 입사 후 3년 뒤 퇴사하며 두 가지를 얻어서 나왔다고 했다. 하나는 ‘크게 생각하는 법’을
익힌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대단한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는 구글에선 뭐든지 대담하게 생각하곤
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Google Maps와 같은 서비스를
만들고자 할 때 그냥 구글의 직원들은 전세상의 사진을 찍자 라는 생각을 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핀터레스트 초기 이용자 5000명 직접 연락
하고 싶은 게 있었지만
기술자가 아니라서 구현할 방법을 몰랐다. 몇 달간 쉬면서 그는 대학 친구 폴 시에라와 연락해서 이런저런
궁리를 했다. 그리고 아이폰 앱(응용프로그램)을 출시했다. 실패했다. 애플
앱스토어에서 받아주지도 않았고 소비자 호응도 없었다.
9개월이 지나서 2010년
선보인 것이 핀터레스트다. 시작하자마자 대박을 내는 종류의 서비스는 아니었다. 1만명 정도가 가입했고, 대부분 드문드문 이용했다. 실버맨은 “200명의 친구에게 핀터레스트 링크를 보냈는데 그중 100명만 이메일을 열어본 것 같았어요. 거의 재앙에 가까울 정도로
적은 수였죠.”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캘리포니아의 구글 사람들과 고향 아이오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계속 날렸다. 이 중 일부는 고정팬이 돼 핀터레스트가 자리잡는 데 도움을 줬다.
핀터레스트가 대박을 내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지나서다. 남자들끼리 만든 사이트였지만 여성들이 진가를 알아봤다. 사진을 수집하고 저장하는 기능은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신부들이 웨딩드레스 사진을 저장하고 친구에게 ‘이거 어떠냐’고 물어보기에 적격이었다. 예쁜 헤어스타일을 만드는 법이나, 맛있는 음식의 조리법, 쇼핑몰에 올라온 멋진 옷 같은 것을 저장하고 공유하기에도 적합했다.
그렇게 Pinterest는 기업가치 110억달러(한화 약 12조 6000억원), 실버맨의 자산은 약 16억달러(한화 1조8300억원)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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