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7일 일요일

구직자의 하소연






나는 구직자다. 평범한 대학생에서 외국물도 먹고 창업을 해볼거라고 발버둥까지 쳐봤다. 지금은 직업을 구하기 위해 원서를 쓰면서 준비중이다. 하지만 이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드는 생각이 있다. 내가 대학생이고 외국에서 생활을 하고 창업을 진행하던 중에는 항상 뚜렷한 목표나 몰입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내가 그것을 왜 하는지 알고 있었다. 나는 불어불문학과이기 때문에 항상 불어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한다면 프랑스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막연히 파리로 놀러가서 바게뜨 빵을 살때 불어로 주문하고 싶었다. 그런 로망이 있었다. 뉴욕에서는  6일간 배를 주리고 하루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돈을 저축하고 영어를 미친듯이 공부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부유한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영어만큼은 못하는 동양 아이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다양한 직업의 어른들을 알게 되었다. 창업을 준비하고 실행할때도 정말 잠도 못자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 몸이 상했었지만 절대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내일이 기대가되고 행복했다. 결과는 실패로 종결되었지만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내 생활의 100%를 쏟아부었기에 일말의 후회도 남지 않았다.

문제는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점이다. 정말 어렸을 때부터 가고 싶은 회사가 있어서 지금까지 준비해왔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아버지가 비행사셔서 어렸을 때부터 비행기 가까이서 자라 비행사에서 일하고 싶다든지, 자동차 광이어서 자동차 회사에 들어가고 싶다든지 하는 지의 지원동기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당 회사에 들어간다는 확신도 없겠지만 말이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공채 시즌이 다가와서부터 내가 좋아했던 것들에 대한 확신조차 흐려지고 있다. 한번에 많은 기업들이 채용공고를 내는데 어떻게 정말 좋아하는 회사 하나에만 지원할 수 있단 말인가. 확률이 정말 작은 그 바늘구멍을 뚫지 못하면 바로 실업자로 전락해버리는데. 더군다가 채용설명회를 가면 거의 다수 회사의 인사부 직원들에게 이런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저도 이 회사에 오고 싶은거라 온게 아니고 여러 곳에 쓰다가 걸린거에요.." "그러니 다 쓰세요." 

이게 현실이라서 "아~ 알겠습니다!" 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럼 나는 내가 하고싶은 일은 정하지 못하고 어느 한 회사가 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말인가? 정말 진심을 담아낸 지원동기로 지원한 회사에서는 서류에서 탈락하고 다른 사람 동기를 참조해 지원했는데 붙어서 일하게 되었다면 그 직업은 나에게 천직일 거란 말인가?


이 문제의 원인을 한번 생각해 보았는데, 물론 취업난과 대학진학률이 높은 대한민국의 현실 등 근본적인 원인들이 있겠지만, 나는 "공채"라는 제도가 핵심적인 원인으로 생각된다. 대한민국의 내노라하는 대기업들의 다수는 아니 거의 99.9%는 상반기와 하반기 두차례로 나누어서 채용을 한다. 그러면 당연히 그 시즌에만 구직자들은 지원을 할 수 밖에 없다. 평소 가고 싶던 회사나 커리어를 쌓고 싶은 직무에 최적화된 회사를 선정해 놓더라도 공채시즌이 되면 다 써야한다. 딱 한 곳만 쓸 수 있는 배짱있는 사람은 본적이 없다. 그래서 단단하고 확신이 있던 마음가짐도 누그러지고 이곳저곳 쓰면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게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시간과 인건비 등 여러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좋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신입 1년차에 퇴사하는 인재들을 양산하고 구직자 입장에서는 시간낭비의 결과만 남는다. 

만약 모든 회사가 정부나 경쟁사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상시채용을 하게 되는 상황을 생각해보았을 때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단점은 그리 크지 않다. 기업입장에서는 더 좋고 확실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적인 측면이 상쇄될 것이다. 구직자들 입장에서는 봄 가을에 "서류 탈락하셨습니다. 다음에 다시 만나요."같은 문자나 메일서비스를 자주 받지 못하는 단점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현대차와 기아차처럼 일부 기업들은 상시채용 제도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움직임이 다른 기업들에게도 전파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자소서'라는 단어도 대한민국에서 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구직자들은 소설쓸 시간에 자신이 '무엇을, 왜' 할지에 대한 고민을 1분이라도 더 할 수 있을 것이고 기업입장에서도 자소설을 읽을 시간에 인사팀 직원들에게 '문학 소설'을 선물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누이좋고 매부좋고 대한민국도 좋을 텐데.
처음 대한민국의 구직자로 살다보니 별 생각이 다난다. 그래서 외국계 회사들이 자꾸 내 눈앞에 아른거린다. 

대한민국 구직자들 화이팅! ('취준생'이라는 단어도 마음에 안든다. 뭔가 이벤트성 의미가 짙다. '구직'이라는 어휘에서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서 지원한다는 느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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